수종사는 다른 잘 알려진 사찰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란 것을 몇 가지 점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사찰까지 오르는 길이 투박하고 주변에 음식점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오르는 주변 숲들에서 자연적인 맛을 충분히 풍미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의 손이 많이 닿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과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오래된 거목들로 둘러싸여 있는 점에서 수종사란 사찰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 수종사 오르는 길(왼쪽), 수종사 입구 오르는 계단 (중앙), 수종사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한강과 두물머리 (오른쪽) ◀
비탈길을 인내를 갖고 오르지 않으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지칠 정도로 거칠고 가파른, 소위 세련되지 못한 길을 굽이굽이 올라야 한다. 여러 번의 휘어진 길을 오르다 보면,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는 일주문격인 대문을 만난다. 사찰이란 느낌을 받기 보다는, 차라리 아주 오래된 조선시대 한 사대부의 고택 같은 느낌에 더 가깝다.
문을 들어가 몇 걸음을 옮기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비밀의 정원에 꽁꽁 감추어둔 마음속 강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지점, 두물머리가 내려다보인다. 수종사는 바로 그 북한강 끝자락 운길산이란 곳에 앉아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수종사는 넉넉한 강의 흐름과 숲의 아름다움이 잘 어우러져 있는, 서정적 풍광이 한눈에 잡히는 자연이 수려한 사찰이다. 조선의 세조가 이 사찰의 이름을 직접 짓고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는 전설이, 있을 법한 실제 이야기라 할 만큼 물과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꿈에서나 만남직한 멋진 전경이 현실 세계인 수종사에 내려앉아 있는 듯하다. 어느 사찰이나 마찬가지로 수종사도 전설을 안고 자란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북한강을 바라보며 서있다. 하지만 사찰과 은행나무 이야기는 대부분 큰 스님들이 그 주인공이었지만, 수종사만큼은 조선을 건국한 세조가 주인공이란 점이 다르다. 500년이 된 은행나무 아래를 살펴보면, 올해에 막 자라 올라온 백일잔치를 겨우 지낸 아기 은행나무들이 한 군데 뭉쳐서 새로운 500년의 꿈을 일구기 시작했다.

▶ 수종사 은행나무, 그리고 은행나무 아래 갓 태어난 애기 은행들 ◀
500년생과 1년생의 간극.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 사이 긴 시간 동안 은행나무는 자손을 생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그 중간 나이의 은행 후손들이 보이지 않는다. 단순한 이 현상만 보았을 때, 500년을 사는 동안 자손을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아니면, 매년 자손을 생산했지만, 모두가 불임이었거나, 아니면 사찰을 관리하는 관리인에 의해 모두가 제거되었거나, 또는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냈거나, 상상하고 추측할 수 있는 범주는 여기까지다. 아무튼 올해에 태어난 애기 은행나무밖에 관찰이 되지 않는다. 궁금해서 물어봐도 사찰 경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작년 6월호에 용문사 은행나무를 소개할 때 자세히 설명한 관계로 여기서는 지면을 절략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나이를 충분히 먹은 사찰답게 주변에는 성숙한 여러 종류의 아름드리나무들이 넉넉하게 자라고 있다.

▶ 아름드리나무들이 수종사의 깊은 세월을 담고 있다. ◀
그래서인지 수종사 주변의 숲들에 재미나는 나무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이번에는 나무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무는 왜, 어떻게 해서 한 아름이 넘을 만큼 굵게 자랄까? 그리고 나무의 얼굴이라 하는 껍질(수피)이 왜 나무마다 다 다를까?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이번 호의 미션이다.
나무가 굵게 자라야 하는 것은 높이 자라는 나무의 속성 때문에 균형과 안정을 위해서는 필연적인 일이다. 나무가 높이 자라야 하는 이유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며, 이웃하고 있는 다른 나무들과의 생존논쟁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낮은 곳에서는 키 작은 많은 다른 식물들과 비좁은 공간에서 충분한 나뭇가지를 뻗어낼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많은 수의 나뭇잎을 매달 수 있는 충분한 나뭇가지를 내밀어야 하는데, 높은 공간만이 나무의 그 갈망을 채워줄 수 있다. 하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치뤄야 하는 역경도 만만치 않다. 지상에서 멀어짐에 따라 나타나는 3가지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 땅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물을 높은 곳까지 운반해야 하는 문제, 둘째,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지는 데 따른 극복문제, 그리고 높이 올라갈수록 더 건조해지기 때문에 이에 따른 극복문제가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땅 가까이 자라는 들풀이나 키 작은 관목들은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키 큰 나무들은 지상으로부터 중력을 역행하는 방향인, 높은 곳을 향해 생장하게 되는 것은 많은 빛을 흡수할 수 있는 넓은 공간 확보에 있다. 다시 말해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모든 다른 역경을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수십 미터 또는 1백 미터가 넘는 높이까지 물을 운반하는 도관과 가도관 시스템이 놀랍도록 잘 발달해 있을 뿐 아니라 그 높이까지 물을 운반하는 데 있어 에너지 소모가 제로라는 점도 나무의 신비한 능력이다. 나뭇가지에 있는 겨울눈(冬芽)1)은 대부분 추위에 매우 민감해서 높이 올라갈수록 불리하게 작용을 한다. 높이 자라는 나무들은 추위를 극복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전략들을 마련해 있다. 나무가 아닌 들풀들은 동지(冬至)가 점점 다가오면 잎뿐 아니라 지상의 모든 몸체의 발달을 중지한다. 긴 시간동안 낮아진 온도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록성 나무든 낙엽성 나무든 간에 나무들은 그러한 고민을 마쳤고, 긴 영하의 온도에 대항한 완전한 전략과 전술을 보유하고 있다.
1) winter bud. 나무와 나무가 아닌 그 밖의 식물들과의 구분점이 된다. 겨울눈에서는 이듬해 꽃과 잎과 그리고 새로운 가지가 돋아난다. 물론 잎만 돋아나는 잎눈, 꽃만 돋아나는 꽃눈 등이 있지만, 나뭇가지의 마디에 만들어지는 겨울눈은 잎과 꽃과 가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무가 반복적으로 삶에 삶을 더하면서 긴 세월을 살 수 있는 까닭도 바로 겨울눈의 발달 덕택이다. 나무의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것도 바로 이 겨울눈의 존재 때문이다.
줄기를 중심으로 해서 측면으로 많은 가지를 뻗는 이유는 가능한 한 많은 잎들이 맺힐 수 있도록,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다. 나무는 기하학적 가지의 뻗음과 다양한 가지의 형태로 발전을 한다. 뿐만 아니라 줄기는 잎이 필요로 하는 물과 물속에 용해되어 있는 무기영양소들을 신속하게 배달을 하는 관다발2)이 발달되어 있다. 물론 이밖에도 나무의 줄기는 잎과 달리 추위와 더위를 선택할 수 없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주변 환경과 맞서 저항해야 한다. 따라서 줄기에는 대부분 두꺼운 껍질이 발달되거나 그 밖에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갖게 된다. 나무의 껍질은 나무의 종류마다 서로 다른 모양과 질감을 나타낸다. 나무의 껍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나무인지 껍질만 봐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관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얼굴만 봐도 서로 누구인지 알 수 있듯이, 나무도 껍질만 봐도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수종사주변의 지름이 30cm 이상이 되는 나무들의 수피의 모양과 질감의 차이를 구분하면서 어떤 나무들인지 알아본다.
2) vascular bundle. 물과 양분이 이동하는 통로. 물관과 채관 또는 목부(木部)와 사부(篩部)로 칭한다. 나무란 식물은 이 원통모양인 목부와 사부를 나누는 칸막이 같은 조직이 있는데, 이를 형성층cambium이라 한다.
나무의 지름이 30cm 이상이 되는 나무는 대략 10종류가 발견된다. 면적에 비해 거목의 종수가 많은 편이며, 우리나라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의 평균 나이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 중 4종류는 침엽수이며, 나머지는 활엽수들이다. 침엽수는 소나무, 잣나무, 잎갈나무 그리고 전나무이다. 우선 침엽수의 얼굴 격이 되는 수피의 차이점을 사진을 보면서 구분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 (왼쪽부터) 소나무, 잣나무, 잎갈나무, 전나무 ◀
이들 중 수피가 가장 두껍게 발달하는 나무는 소나무이며, 그 다음으로 잎갈나무, 잣나무, 전나무 순이다. 전나무의 수피가 가장 얇고, 소나무의 수피가 가장 두껍다. 소나무는 강한 빛이 내리쬐는 곳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수피가 발달된 것이며, 수피가 얇은 전나무는 빛이 강하게 노출된 곳에서는 어린 전나무의 생존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잎갈나무와 잣나무는 소나무와 전나무의 중간쯤의 빛의 세기에 적응한 나무들이다. 따라서 나무의 수피가 두껍고 얇고는 추위를 견디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빛의 세기에 적응한 결과물이다. 사진의 나무수피를 보면 수피가 갈라진 모양들이 서로 다르다. 그 모양들을 잘 기억하면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수피의 모양들이 서로 다른 이유는 생물의 기초가 되는 세포(cell)에서 그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생물은 그 기초단위가 세포이다. 세포는 생물마다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을 갖고 있다. 즉, 모양도 서로 다르지만, 그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나무라는 식물들도 모두가 같은 모양과 크기의 세포로 되어 있지 않고, 서로 다르다. 세포들 중 같은 일을 담당하는 세포들의 집합을 조직이라 하는데, 수피의 일을 하는 세포들이 모여 있는 집단을 수피조직이라 한다. 그 조직들을 이루는 세포들이 죽고 나면 세포들 내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간다. 마치 논과 밭이 건조해지면 갈라지듯이 죽은 세포들의 집단인 수피들도 그런 연유에서 갈라지게 되며,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게 되는 이유는 세포들의 모양과 크기가 서로 다르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 이유에서 소나무의 껍질은 마치 갑옷이나 거북등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잣나무의 껍질은 마치 어수선한 물고기 비늘 같은 모양을 하게 되고, 잎갈나무의 수피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해 세로로 길게 찢어놓은 듯 한 껍질의 형태를 취하게 되며, 전나무의 수피는 다른 침엽수의 수피에 비해 얇고, 둥근 편이며, 물고기비늘모양에 더 가깝다. 아래는 활엽수의 사진들이다.

▶ (왼쪽부터) 서어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말채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
서어나무의 수피는 나무 중에서 껍질이 가장 얇은 나무에 속한다. 이는 빛이 차단된 아주 어두운 곳에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대표적인 나무이다. 또한 나무줄기의 부분들이 고르게 생장을 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세포의 생장속도가 줄기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결과 줄기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모양을 보이게 된다. 느티나무도 비교적 얇은 껍질의 소유자이다. 수피를 좀 더 자세히 보면 무수히 많은 점 같은 것들이 보인다. 이는 수피로 호흡을 하는 호흡구멍(피목皮目)이다. 더 가까이에서 보면 하나하나의 점 같은 것이 마치 사람의 입술모양을 하고 있다. 대부분 나무들의 수피가 세로로 길게 찢어지는 특징을 보이지만, 벚나무의 수피는 그 정반대로 가로줄로 갈라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갈라지는 틈을 자세히 보면, 모양은 느티나무의 피목과 다르지만, 이 또한 호흡을 할 수 있는 숨구멍인 피목이다. 벚나무의 수피색깔은 어두운 초콜릿색을 하고 있다. 흔하게 보이는 나무는 아니지만, 다음은 말채나무라는 것이다. 말채나무의 수피는 직사각형의 작은 조각들이 타일처럼 발달해 있는 모양이다. 다음은 졸참나무의 수피이다. 세로줄로 깊은 골을 형성하며 발달을 하고, 굴참나무의 수피는 졸참나무의 수피보다 더 깊게 패이고, 세로줄은 짧고, 각각의 조각들과의 연결이 잘 되어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둘러보면 졸참나무의 수피의 질감은 딱딱하지만, 굴참나무의 수피는 푹신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모두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나무들은 제마다의 고유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무는 1년에 나이테 2개를 만든다. 나무내부, 껍질 바로 안쪽에 물과 양분이 이동하는 길이 있다. 물관과 채관 조직들이다. 이 물관과 채관의 조직세포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있는데, 이것을 형성층(cambium)이라 한다. 형성층의 세포들은 나무가 죽는 순간까지 새로운 어린세포를 생산해 내는 세포생산 공장인 셈이다. 이 세포층은 큰 나무에서 씨앗이 생겨날 때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세포생산공장에서 한 번은 나무의 안쪽으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고, 이것은 물을 운반하는 도관세포조직들이 되고, 또 다른 한 번은 나무의 중심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세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나뭇잎에서 생산한 양분을 아래로 운반시키는 채관세포조직이 된다. 이미 말했듯이 세포공장은 나무가 죽는 순간까지 안쪽, 바깥쪽을 반복하면서 세포들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안쪽으로 생산된 세포들은 진짜 나이테가 되고, 바깥으로 생산된 세포들은 나무의 껍질이 된다. 나무의 내부나이테 부분과 나무의 껍질은 이러한 원리로 만들어지게 된다. 예를 들면 100년생의 나무는 본래의 나이테 100개가 만들어지고, 껍질 나이테도 똑같이 100개가 된다. 안쪽 본래의 나이테는 100년이 지나든 1000년이 지나든 간에 고스란히 그 형체를 간직할 수 있지만, 수피의 나이테는 외부환경과 직접 닿아있기 때문에 각종 풍화작용에 의해 탈리현상이 쉽게 일어난다. 외부의 물리적 현상에 의해 껍질이 떨어지기에 수피의 나이테로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는 없다. 나무의 껍질이 갈라지는 이유는 형성층이란 세포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세포들은 나이가 들면서 노화되어 가고, 노화된 세포들은 죽게 된다. 이는 안쪽으로 만들어지는 세포도 바깥쪽으로 만들어지는 세포도 마찬가지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죽게 된다. 그런데 형성층은 나무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적으로 새로운 세포들을 만들어 내고, 나이를 먹은 세포들은 죽게 된다.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무의 껍질이 찢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소나무의 수피를 자세히 보면 수십 개의 겹으로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소나무가 두꺼운 여러 겹의 껍질을 붙이고 있는데, 이는 직사광선으로 인해 수분손실을 막기 위한 자기 방어적 전략인 셈이다. 수피의 골이 깊은 나무일수록 수많은 곤충들이 기꺼이 거주하고 싶어 하는 훌륭하고 안락한 호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투숙객들을 만찬의 음식으로 여기고 찾아오는 동고비나 나무발바리와 같은 아주 전문화된 새들도 서식하게 된다. 생존하기 위해 나무가 부리는 단순한 수피의 형태 하나에도 세상을 향해 이토록 이롭고 선한 행위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자연을 대하는 나의 행위가 얼마나 낡아 해지고 초라한지, 거목을 만날 때마다 왜 내가 늘 작아졌는지를, 왜 거목이 큰 바위 얼굴처럼 느껴졌는지를 깨달게 하는 순간이다.
[출처 : 숲연구소 - 숲이야기]
수종사는 다른 잘 알려진 사찰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란 것을 몇 가지 점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사찰까지 오르는 길이 투박하고 주변에 음식점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오르는 주변 숲들에서 자연적인 맛을 충분히 풍미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의 손이 많이 닿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과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오래된 거목들로 둘러싸여 있는 점에서 수종사란 사찰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 수종사 오르는 길(왼쪽), 수종사 입구 오르는 계단 (중앙), 수종사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한강과 두물머리 (오른쪽) ◀
비탈길을 인내를 갖고 오르지 않으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지칠 정도로 거칠고 가파른, 소위 세련되지 못한 길을 굽이굽이 올라야 한다. 여러 번의 휘어진 길을 오르다 보면,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는 일주문격인 대문을 만난다. 사찰이란 느낌을 받기 보다는, 차라리 아주 오래된 조선시대 한 사대부의 고택 같은 느낌에 더 가깝다.
문을 들어가 몇 걸음을 옮기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비밀의 정원에 꽁꽁 감추어둔 마음속 강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지점, 두물머리가 내려다보인다. 수종사는 바로 그 북한강 끝자락 운길산이란 곳에 앉아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수종사는 넉넉한 강의 흐름과 숲의 아름다움이 잘 어우러져 있는, 서정적 풍광이 한눈에 잡히는 자연이 수려한 사찰이다. 조선의 세조가 이 사찰의 이름을 직접 짓고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는 전설이, 있을 법한 실제 이야기라 할 만큼 물과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꿈에서나 만남직한 멋진 전경이 현실 세계인 수종사에 내려앉아 있는 듯하다. 어느 사찰이나 마찬가지로 수종사도 전설을 안고 자란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북한강을 바라보며 서있다. 하지만 사찰과 은행나무 이야기는 대부분 큰 스님들이 그 주인공이었지만, 수종사만큼은 조선을 건국한 세조가 주인공이란 점이 다르다. 500년이 된 은행나무 아래를 살펴보면, 올해에 막 자라 올라온 백일잔치를 겨우 지낸 아기 은행나무들이 한 군데 뭉쳐서 새로운 500년의 꿈을 일구기 시작했다.
▶ 수종사 은행나무, 그리고 은행나무 아래 갓 태어난 애기 은행들 ◀
500년생과 1년생의 간극.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 사이 긴 시간 동안 은행나무는 자손을 생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그 중간 나이의 은행 후손들이 보이지 않는다. 단순한 이 현상만 보았을 때, 500년을 사는 동안 자손을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아니면, 매년 자손을 생산했지만, 모두가 불임이었거나, 아니면 사찰을 관리하는 관리인에 의해 모두가 제거되었거나, 또는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냈거나, 상상하고 추측할 수 있는 범주는 여기까지다. 아무튼 올해에 태어난 애기 은행나무밖에 관찰이 되지 않는다. 궁금해서 물어봐도 사찰 경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작년 6월호에 용문사 은행나무를 소개할 때 자세히 설명한 관계로 여기서는 지면을 절략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나이를 충분히 먹은 사찰답게 주변에는 성숙한 여러 종류의 아름드리나무들이 넉넉하게 자라고 있다.
▶ 아름드리나무들이 수종사의 깊은 세월을 담고 있다. ◀
그래서인지 수종사 주변의 숲들에 재미나는 나무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이번에는 나무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무는 왜, 어떻게 해서 한 아름이 넘을 만큼 굵게 자랄까? 그리고 나무의 얼굴이라 하는 껍질(수피)이 왜 나무마다 다 다를까?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이번 호의 미션이다.
나무가 굵게 자라야 하는 것은 높이 자라는 나무의 속성 때문에 균형과 안정을 위해서는 필연적인 일이다. 나무가 높이 자라야 하는 이유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며, 이웃하고 있는 다른 나무들과의 생존논쟁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낮은 곳에서는 키 작은 많은 다른 식물들과 비좁은 공간에서 충분한 나뭇가지를 뻗어낼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많은 수의 나뭇잎을 매달 수 있는 충분한 나뭇가지를 내밀어야 하는데, 높은 공간만이 나무의 그 갈망을 채워줄 수 있다. 하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치뤄야 하는 역경도 만만치 않다. 지상에서 멀어짐에 따라 나타나는 3가지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 땅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물을 높은 곳까지 운반해야 하는 문제, 둘째,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지는 데 따른 극복문제, 그리고 높이 올라갈수록 더 건조해지기 때문에 이에 따른 극복문제가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땅 가까이 자라는 들풀이나 키 작은 관목들은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키 큰 나무들은 지상으로부터 중력을 역행하는 방향인, 높은 곳을 향해 생장하게 되는 것은 많은 빛을 흡수할 수 있는 넓은 공간 확보에 있다. 다시 말해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모든 다른 역경을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수십 미터 또는 1백 미터가 넘는 높이까지 물을 운반하는 도관과 가도관 시스템이 놀랍도록 잘 발달해 있을 뿐 아니라 그 높이까지 물을 운반하는 데 있어 에너지 소모가 제로라는 점도 나무의 신비한 능력이다. 나뭇가지에 있는 겨울눈(冬芽)1)은 대부분 추위에 매우 민감해서 높이 올라갈수록 불리하게 작용을 한다. 높이 자라는 나무들은 추위를 극복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전략들을 마련해 있다. 나무가 아닌 들풀들은 동지(冬至)가 점점 다가오면 잎뿐 아니라 지상의 모든 몸체의 발달을 중지한다. 긴 시간동안 낮아진 온도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록성 나무든 낙엽성 나무든 간에 나무들은 그러한 고민을 마쳤고, 긴 영하의 온도에 대항한 완전한 전략과 전술을 보유하고 있다.
줄기를 중심으로 해서 측면으로 많은 가지를 뻗는 이유는 가능한 한 많은 잎들이 맺힐 수 있도록,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다. 나무는 기하학적 가지의 뻗음과 다양한 가지의 형태로 발전을 한다. 뿐만 아니라 줄기는 잎이 필요로 하는 물과 물속에 용해되어 있는 무기영양소들을 신속하게 배달을 하는 관다발2)이 발달되어 있다. 물론 이밖에도 나무의 줄기는 잎과 달리 추위와 더위를 선택할 수 없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주변 환경과 맞서 저항해야 한다. 따라서 줄기에는 대부분 두꺼운 껍질이 발달되거나 그 밖에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갖게 된다. 나무의 껍질은 나무의 종류마다 서로 다른 모양과 질감을 나타낸다. 나무의 껍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나무인지 껍질만 봐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관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얼굴만 봐도 서로 누구인지 알 수 있듯이, 나무도 껍질만 봐도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수종사주변의 지름이 30cm 이상이 되는 나무들의 수피의 모양과 질감의 차이를 구분하면서 어떤 나무들인지 알아본다.
나무의 지름이 30cm 이상이 되는 나무는 대략 10종류가 발견된다. 면적에 비해 거목의 종수가 많은 편이며, 우리나라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의 평균 나이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 중 4종류는 침엽수이며, 나머지는 활엽수들이다. 침엽수는 소나무, 잣나무, 잎갈나무 그리고 전나무이다. 우선 침엽수의 얼굴 격이 되는 수피의 차이점을 사진을 보면서 구분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 (왼쪽부터) 소나무, 잣나무, 잎갈나무, 전나무 ◀
이들 중 수피가 가장 두껍게 발달하는 나무는 소나무이며, 그 다음으로 잎갈나무, 잣나무, 전나무 순이다. 전나무의 수피가 가장 얇고, 소나무의 수피가 가장 두껍다. 소나무는 강한 빛이 내리쬐는 곳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수피가 발달된 것이며, 수피가 얇은 전나무는 빛이 강하게 노출된 곳에서는 어린 전나무의 생존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잎갈나무와 잣나무는 소나무와 전나무의 중간쯤의 빛의 세기에 적응한 나무들이다. 따라서 나무의 수피가 두껍고 얇고는 추위를 견디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빛의 세기에 적응한 결과물이다. 사진의 나무수피를 보면 수피가 갈라진 모양들이 서로 다르다. 그 모양들을 잘 기억하면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수피의 모양들이 서로 다른 이유는 생물의 기초가 되는 세포(cell)에서 그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생물은 그 기초단위가 세포이다. 세포는 생물마다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을 갖고 있다. 즉, 모양도 서로 다르지만, 그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나무라는 식물들도 모두가 같은 모양과 크기의 세포로 되어 있지 않고, 서로 다르다. 세포들 중 같은 일을 담당하는 세포들의 집합을 조직이라 하는데, 수피의 일을 하는 세포들이 모여 있는 집단을 수피조직이라 한다. 그 조직들을 이루는 세포들이 죽고 나면 세포들 내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간다. 마치 논과 밭이 건조해지면 갈라지듯이 죽은 세포들의 집단인 수피들도 그런 연유에서 갈라지게 되며,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게 되는 이유는 세포들의 모양과 크기가 서로 다르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 이유에서 소나무의 껍질은 마치 갑옷이나 거북등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잣나무의 껍질은 마치 어수선한 물고기 비늘 같은 모양을 하게 되고, 잎갈나무의 수피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해 세로로 길게 찢어놓은 듯 한 껍질의 형태를 취하게 되며, 전나무의 수피는 다른 침엽수의 수피에 비해 얇고, 둥근 편이며, 물고기비늘모양에 더 가깝다. 아래는 활엽수의 사진들이다.
▶ (왼쪽부터) 서어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말채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
서어나무의 수피는 나무 중에서 껍질이 가장 얇은 나무에 속한다. 이는 빛이 차단된 아주 어두운 곳에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대표적인 나무이다. 또한 나무줄기의 부분들이 고르게 생장을 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세포의 생장속도가 줄기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결과 줄기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모양을 보이게 된다. 느티나무도 비교적 얇은 껍질의 소유자이다. 수피를 좀 더 자세히 보면 무수히 많은 점 같은 것들이 보인다. 이는 수피로 호흡을 하는 호흡구멍(피목皮目)이다. 더 가까이에서 보면 하나하나의 점 같은 것이 마치 사람의 입술모양을 하고 있다. 대부분 나무들의 수피가 세로로 길게 찢어지는 특징을 보이지만, 벚나무의 수피는 그 정반대로 가로줄로 갈라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갈라지는 틈을 자세히 보면, 모양은 느티나무의 피목과 다르지만, 이 또한 호흡을 할 수 있는 숨구멍인 피목이다. 벚나무의 수피색깔은 어두운 초콜릿색을 하고 있다. 흔하게 보이는 나무는 아니지만, 다음은 말채나무라는 것이다. 말채나무의 수피는 직사각형의 작은 조각들이 타일처럼 발달해 있는 모양이다. 다음은 졸참나무의 수피이다. 세로줄로 깊은 골을 형성하며 발달을 하고, 굴참나무의 수피는 졸참나무의 수피보다 더 깊게 패이고, 세로줄은 짧고, 각각의 조각들과의 연결이 잘 되어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둘러보면 졸참나무의 수피의 질감은 딱딱하지만, 굴참나무의 수피는 푹신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모두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나무들은 제마다의 고유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무는 1년에 나이테 2개를 만든다. 나무내부, 껍질 바로 안쪽에 물과 양분이 이동하는 길이 있다. 물관과 채관 조직들이다. 이 물관과 채관의 조직세포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있는데, 이것을 형성층(cambium)이라 한다. 형성층의 세포들은 나무가 죽는 순간까지 새로운 어린세포를 생산해 내는 세포생산 공장인 셈이다. 이 세포층은 큰 나무에서 씨앗이 생겨날 때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세포생산공장에서 한 번은 나무의 안쪽으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고, 이것은 물을 운반하는 도관세포조직들이 되고, 또 다른 한 번은 나무의 중심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세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나뭇잎에서 생산한 양분을 아래로 운반시키는 채관세포조직이 된다. 이미 말했듯이 세포공장은 나무가 죽는 순간까지 안쪽, 바깥쪽을 반복하면서 세포들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안쪽으로 생산된 세포들은 진짜 나이테가 되고, 바깥으로 생산된 세포들은 나무의 껍질이 된다. 나무의 내부나이테 부분과 나무의 껍질은 이러한 원리로 만들어지게 된다. 예를 들면 100년생의 나무는 본래의 나이테 100개가 만들어지고, 껍질 나이테도 똑같이 100개가 된다. 안쪽 본래의 나이테는 100년이 지나든 1000년이 지나든 간에 고스란히 그 형체를 간직할 수 있지만, 수피의 나이테는 외부환경과 직접 닿아있기 때문에 각종 풍화작용에 의해 탈리현상이 쉽게 일어난다. 외부의 물리적 현상에 의해 껍질이 떨어지기에 수피의 나이테로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는 없다. 나무의 껍질이 갈라지는 이유는 형성층이란 세포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세포들은 나이가 들면서 노화되어 가고, 노화된 세포들은 죽게 된다. 이는 안쪽으로 만들어지는 세포도 바깥쪽으로 만들어지는 세포도 마찬가지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죽게 된다. 그런데 형성층은 나무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적으로 새로운 세포들을 만들어 내고, 나이를 먹은 세포들은 죽게 된다.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무의 껍질이 찢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소나무의 수피를 자세히 보면 수십 개의 겹으로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소나무가 두꺼운 여러 겹의 껍질을 붙이고 있는데, 이는 직사광선으로 인해 수분손실을 막기 위한 자기 방어적 전략인 셈이다. 수피의 골이 깊은 나무일수록 수많은 곤충들이 기꺼이 거주하고 싶어 하는 훌륭하고 안락한 호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투숙객들을 만찬의 음식으로 여기고 찾아오는 동고비나 나무발바리와 같은 아주 전문화된 새들도 서식하게 된다. 생존하기 위해 나무가 부리는 단순한 수피의 형태 하나에도 세상을 향해 이토록 이롭고 선한 행위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자연을 대하는 나의 행위가 얼마나 낡아 해지고 초라한지, 거목을 만날 때마다 왜 내가 늘 작아졌는지를, 왜 거목이 큰 바위 얼굴처럼 느껴졌는지를 깨달게 하는 순간이다.
[출처 : 숲연구소 - 숲이야기]